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011) 읽다

* 김형경


"무슨 일을 하든 세진은 자신이 하는 일에 혼을 쏟았다. 마늘을 깔 때면 속껍질을 벗겨 내는 손길이 마치 마늘을 애무하는 것 같았고, 바닥에 엎드려 걸레질할 때면 방바닥과 사랑을 나누는 것 같았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길을 걸을 때면 그 길과 간절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시절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인혜는 그것을 깨달았다.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릴 때조차 세진은 그 행위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 1권 중 33P


"인혜는 서둘러 고개를 돌린 후 자판기 버튼을 눌렀고, 커피가 나온 다음에야 냉커피를 뽑았음을 알았다. 한겨울에 냉커피를 마시면서 인혜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특별한 조짐이야." - 56P


"「이십대 때 얘기를 해보세요.  
못하겠어요, 창피해서.  
사르트르가 그런 말을 했죠. 창피하다는 느낌은 나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나를 대상화시켜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거죠.  
네, 저 그거 인정해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  
그것은 일차적인 방어 의식이죠.  
그렇군요." - 93P


"인혜 쪽에서도 자신이 진웅에게 끌리는 이유가 어렴풋이 잡히는 듯했다. 그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세상에 잠시 찾아든 정전 같은 존재였다. 전기가 나가면 그 틈에 기계도 멎고 노동자도 쉬듯 인혜에게 진웅은 휴식 같은 존재였다(…)삶이 아무래도 멀미를 일으킬 것 같은 때에, 이 속도에서 내려서면 어떻게 될지 예상되지 않아 초조한 인혜에게 진웅의 존재는 하나의 해법 같았다." - 162P


"「그런데 요즈음은 모텔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세요? 허공에 뜬 포르노그래피구나. 빼곡한 창문마다 저 안쪽에 벌거벗은 남녀가 누워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보세요. 저마다 다른 신체, 다른 언어, 다른 체위의 남녀들이 허공에 가득 떠 있는 거요." - 182P


"「내가 지금 네게 음식을 덜어 주는 행위도, 좀 전에 네게 선물을 준 행위도 다 같은 의미야. 내가 이만한 애정을 너에게 주니, 너도 나를 좀 사랑해 줄래? 그런 뜻이더라.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선물을 할 때마다 상대방의 애정을 구걸하고 있었던 거야." - 261P


"많은 사랑과 이별을 한 다음 인혜가 깨달은 또 하나의 진실은 사랑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진의 방식대로 말하면 질량 불변의 법칙에 해당할 것이다. 한 인간의 내면에 깃든 분노나 슬픔의 질량이 일정한 것이듯 사랑도 그랬다. 늘 가슴속에 깃들어 있으면서 적당한 때에 적당한 상대를 만나 찰랑거리기도 했고 끓어오르기도 했다. 이별이란 그 사랑의 역동성이 잠시 멎는, 사랑의 감정이 활동하지 않는 상태를 일컬을 뿐이었다. 인혜가 어떤 이별 앞에서도 오래 낙담하니 않았던 이유도 거기 있었다. 세진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에는 또한 관성의 법칙도 작용하는 게 틀림없었으므로." - 2권 중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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