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 (2013) 읽다

* 김경욱


"다큐멘터리 영화 「쇼아shoah」(1985)의 클로드 란츠만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다루면서 단 한 컷의 기록 사진이나 영상 자료도 사용하지 않았다. 란츠만에 따르면 실재는 재현될 수 없으며, 홀로코스트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31P



"죄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응시-배제의 시선과 내재적 시선, 관습적 시선과 합리적 시선 그리고 강요의 시선과 설명의 시선-를 통해 1980년대는 자백을 요구한다. 그러나 두 가지 응시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연쇄살인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 책임으로 환원하지 않는 것이다. 살인은 익명의 개인이 저지른 범죄 행위이다. 범인을 잡으면 행위는 반복되지 않는다. 서경장과 박형사는 범죄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대신 범인이 누구냐는 질문만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그들 자신이 1980년대에 이루어진 공식적 '살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고문을 수행하면서 죄의 자백을 강요하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 76P



"두 소녀의 장례식을 망쳐버린 주범 가운데 하나는 자국민의 죽음을 수수방관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무능력한 국가다. 「살인의 추억」의 다른 희생자들과 달리 소현은 국가가 시행하는 야간 등화관제 시간에 살해당한다.「괴물」의 정부 당국은 가공할 만한 괴물을 제거하기보다 괴물에 의한 바이러스의 차단에만 몰두한다. 그들은 현서의 생존 따위는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할리우드 영화라면 살아났을 그 소녀는 한국영화에서 살아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연쇄살인범은 끝내 잡지 못했기에 희생자에 대한 책임은 계속 유보되고, 괴물은 애초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다."   - 152P



"벤야민은 두 개의 비극이 있다고 말하는데, 하나는 그리스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 비극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죽음을 통해 운명을 극복하고 벗어난다면, 독일 비극에서는 이같은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을 언제나 실존적인 극한 상황, 즉 죽음이라는 잣대로 고찰하는 독일 비극은 주인공의 운명을 역사 앞에서 무기력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때문에 여기에는 줄거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형이상적인 설명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파국의 폐허가 있을 뿐이다.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종말의 관점에서, 독일 비극은 삶을 애초부터 죄를 짊어진 상태, 곧 죽음에 귀착되는 것으로 나타낸다."   -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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