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2002) 읽다

* 박노자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한국 모두 자본주의를 자발적·유기적으로 잉태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이식한 사회로서 경제·소비 윤리에서 한 가지 특징을 공통점으로 한다. 즉, 중세적인 금욕주의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본주의적 물신 숭배를 그대로 받아들인 탓에 이것이 봉건적인 과시 지향과 결부돼 비정상적인 소비윤리를 낳은 것이다. 모스크바를 '세계에서 벤츠가 가장 많은 도시'로 만든 러시아 졸부들이 프랑스산 고급 마차를 유럽에서 가장 많이 소비했다는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미풍양속'을 이어받았듯이, 외제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한국의 일부 부유층은 공교롭게도 명나라의 물건을 탐내던 고려 말·조선 초기 일부 사대부의 풍토를 좀더 왜곡된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 51P




"노르웨이 '사냥 애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을 숲 속으로 이끄는 것은 일종의 '권력 체험' 요소다. 도심사회에서 일상적인 규범을 지키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평등한 사회에서 그 누구에게도 목청을 높이지 못하던 사람이, 숲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스릴감과 함께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군주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평등을 지켜야 하는 시민에 불과하던 사람이 갑자기 동물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절대군주가 되는 것이다. 민주사회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이 총기의 위력에 힘입어 잠깐이나마 자연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사냥 애호가'들의 말로는, 이와 같은 '권력 체험'은 인간의 가장 깊은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 '권력 체험'이 인간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해 준다는 이야기를 별 부끄러움 없이 대중매체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문명의 외피 밑에 숨겨져 있는 야만의 '기저'가 얼마나 두꺼운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할 기회가 없자 동물 위에라도 군림하려는 인간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금 인간 위에 군림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 174P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