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십금 쌍담 (2016) 읽다


* 강신주, 이상용


"어린아이들은 벗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아이가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사회의식이 형성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사다와 기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기꺼이 옷을 벗습니다. 알몸이 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인 동시에, 숨기는 게 없음을 보여 주는 행동입니다. 나의 알몸은 상대에 대한 솔직함과 사랑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반면, 전적으로 타인인 누군가의 알몸은 정상적인 것을 벗어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타인이 '옷'으로서 드러나기를 바라죠.
왜 그럴까요. 이것은 인간 사회가 지닌 인식의 문제와도 깊이 연관돼 있어요. 옷은 타인의 경제력, 신분, 직업, 성별 등을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벌거벗은 몸은 '존재 그 자체'로 다가오기에, 우리는 그 타인이 누구인지 분별할 수 없어요. 그게 불편한 겁니다. 인간이 옷을 입는 사회학적 이유는 구별하기 위함이에요. 왕은 왕의 옷을 입기 때문에 왕일 수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광대는 광대의 옷을 입기 때문에 광대가 되는 겁니다. 만약 모두가 벌거벗고 지낸다면 아마 이런 식의 구별은 무척 어려워질 거예요. 그래서 권력에 저항하는 영화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때 종종 모든 사람들이 벌거벗고 항거하는 모습을 표현하곤 하죠."   - 32P



"언젠가 제가 사르트르가 한 이런 말을 인용했는데요. "내 손가락 밑에 놓인 그 사람의 몸이 단순한 살덩어리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애무라고 했어요. 사다는 '저 사람이 나 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가?' 싶어서 상대의 몸을 만져요. 내 손길에 반응하면 나에게 집중하는 거예요. 혹시 딴생각하는 사람을 만져 봤어요? 아무런 반응이 없잖아요. 꼭 죽은 것처럼요. 사다도 섹스를 하다가 조는 기치를 때리고, 급기야 점점 더 수위를 올려요. 기치가 자꾸만 허무로 빠져드니까, 죽어 가니까요.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지어요. 이 관계가 얼마 안 남았다고 직감한 거예요. 그러고는 기치의 마지막 바람을 이뤄 주려고 하죠. 사랑했으니까요."   - 53P



"'훈육을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완전히 훈육되지 않아.' 이건 루소가 좋아한 주제였죠. 자연 상태의 인간을 보존하려는 거예요. 하지만 그런 상태를 '희망'으로 읽는 순간, 우리는 첫 번째 단계의 알렉스를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우왕좌왕할 거예요. 그럼 세 번째 단계가 좋은 걸까요? 욕망을 꿈꿀 수만 있는 알렉스 말예요. 더 이상 성폭행도, 노숙자도 두들겨 패지 못하는 알렉스 말입니다. 이 영화는 잔혹해요. 지나치게 정직하기 때문에 잔인한 겁니다. 자신의 맨 얼굴을 보는 것처럼 불쾌한 일은 없어요. 자기가 지닌 진짜 욕망들, 그러니까 겉으로는 요조숙녀 같고 신사 같지만 천박한 욕망으로 들끓고 있는 자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욕망을 입 밖으로 꺼내 보지조차 못해요. 지금 이 순간, 솔직한 욕망은 눈앞의 남자랑 모텔에 들어가는 건데, 끝내 우물쭈물하다가 집에 돌아가서 후회하죠. 물론 대놓고 덮쳤다가는 바로 경찰서로 잡혀가 눈을 까뒤집고 약물 치료를 받게 되겠죠. 이게 뭐예요?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엔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빠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폭력에 반하는 세계, '사랑의 세계' 말입니다!"   - 123P



"파시스트들은 소년과 소녀들을 사물로 취급합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름다운 엉덩이를 선별하는 장면입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는 것이죠. 이러한 시선은 파시스트만 지닌 게 아니에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물화해요. 그런 면에서 파시즘과 자본주의는 서로 연결됩니다. 인간을 사물처럼 대하는 파시즘은,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와 등가를 이루죠."   - 165P



"줄넘기가 소녀의 손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저 잠깐의 놀이 기구였겠죠. 자살의 도구도, 성폭력의 도구도 아니에요. 그저 하나의 줄일 뿐인데 우리는 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상한 용도로 사용하지요. 이건 부뉴엘이 사물을 통해 우리의 통념을 흔드는 방식입니다. '줄넘기는 놀이 도구에 불과해.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신이 장면 장면마다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보라고. 당신은 줄넘기를 제대로 가지고 놀 줄도 모르잖아. 줄넘기는 한 사람의 자살 도구이면서, 성적 뉘앙스를 지닌 폭력의 흉기이기도 해. 그게 사물의 본성이야. 사물은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애초에 부여된 본성은 아무것도 없어. 왜 젓가락을 음식 집어먹는 도구라고만 생각해? 얼마든지 다른 상상력을 부여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게 바로 초현실주의자들이 사물을 활용하는 방식이야.'라고 그가 말하는 듯합니다 "   -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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