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을 말하다 (2007) 읽다

* 지승호


"박진표 _ <죽어도 좋아> 때는 그랬어요. 우리도 다 연기를 하면서 살아요. 지금 지승호 씨도 연기를 하면서 사실 거예요, 분명히. 다만 카메라가 없다뿐이죠. 사람은 다 연기를 하면서 살거든요. 그런데 배우들은, 상업 배우들은 항상 카메라가 있으니까 그 연기를 하는 것이 조금 익숙할 뿐인 것이고, 사실은 우리들도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게 다 연기라고 보는 거죠.의식된 행동이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그런 것이 다 연기라는 거죠. 다만 내 앞에 카메라가 없을 뿐이지. 그 사람들과 영화를 찍을 때엔 카메라만 익숙하게 해주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궤변일 수 있겠지만, 배우들은 다만 카메라가 너무 익숙할 뿐인 거죠.
지승호 _ <죽어도 좋아>는 신인배우가 자기 얘기를 연기했을 뿐이라는 거죠?
박진표 _ 그렇게 생각해요."   - 95P



"박찬욱 _ 그런 사람들은 많이 있죠. 예전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비판을 받으면 '잘못했구나' 하면서도 이분의 기준이 워낙 높아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습니다. (정성일 씨분만이 아니고) 외국의 누구든지, 한국의 누구든지 '굉장히 기준이 높은 사람이어서 내 영화가 거기에 만족이 안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죠. 사실 평론가라는 사람들은 세계 영화 역사의 걸작들을 다 본 사람들이고, 그런 위대한 감독들의 영화에 비교하면 얼마나 보잘것없겠어요. 그렇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데 그러다가 그분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뭔지, 높게 평가하는 영화가 뭔지 보게 되는데요. 교과서에 나오는 예전의 걸작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동시대에 쏟아져 나온 작품 중에 칭찬한 것을 보다 보면 '이건 뭐야?'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반성되는 마음이 일거에 다 무너지면서 '아니, 이따위 영화를 좋아하면서 나를 씹나. 내가 이만큼도 못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평론가는 씹으려면 모든 영화를 다 씹든가, 모든 영화를 다 칭찬하든가 그래야 누구에게도 욕을 안 먹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사람들의 취향을 보거나 판단할 적에 무엇을 싫어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나는 <벤허>같은 영화가 싫어"라고 말하는 것, 전통적으로 영화사 최고 걸작으로 얘기하는 그런 것에 대해서 "나는 그거 싫어"라고 말하는 것이 제 취향을 드러내는 방법이었죠. 저도 젊을 때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건 아니잖아요. "나는 뭐가 좋아" 이게 중요한 거죠. 그럴 때 내가 인정할 수 없는 기준을 가진 평자들이 참 많습니다."   - 159P



"이송희일 _ 저는 아직까지 그람시라는 인물을 좋아해요. 헤게모니라는 게 설득과 동의인 건데, 평론가들의 입장도 저는 이해하거든요. 이 엄청난 마케팅 자본 자체에 휘둘려서 관객들의 영화 보는 눈높이를 함량 미달 수준으로 떨어뜨린 건 분명하거든요. 요즘 평론가들 보면 시인들 같아요. 가장 반자본주의적이잖아요. 개인적 저항과 사회적 저항 모든 게 다 있는 시이지만, 평론 같은 경우도 외면당하고 있는데요.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과정들이 결국 아이디어인 것 같은데,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평론이나 인디 진영이나 훨씬 더 많은 관객들을 설득해서 '이 이야기를 같이 생각해보자'라고 하는 화법도 만들어가야겠지요. 아이디어도 신선하게 제공을 해야겠고. 방 안에서 자기 혼자 보는 영화를 찍어서 '관객들은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걸까?' 하고 혼자 저주받은 천재인 척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재능도 없고, 영화로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 246P



"임상수 _ 사람들이 다 바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합시다. 사실은 1,000만 원짜리 옷을 사 입는 상황을 누구나 바라는 거 아닐까요? 내가 못 하니까 화가 날 뿐이지. 386이 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출세했다고 쳐요. 출세라는 말 자체도 비아냥이 깔려 있는 단어잖아요. 다들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뭡니까? 돈 많이 벌고 출세하려는 거 아닌가요? 그걸 나쁘게 보지는 말자구요. 386이 예전에 운동권 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간 게 뭐가 나쁜 일이겠어요? 가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그런 상황이 이 영화에 있는데, 임상수가 그걸 비꼰 건지 아닌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왜 그걸 질문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걸 보고 마음이 찔리는 사람은 찔리는 거고, 그걸 보고 누굴 생각하면서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소한 거고, 그걸 보고 '저게 뭐 어때?' 하는 사람은 또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전 그것만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정확히 우리의 삶의 모습인 거고, 그게 옳으냐 그르냐는 사실 제가 얘기하고 있지 않죠. 단칼에 그게 옳냐 그르냐 얘기할 수 없는 거잖아요."   - 294P



"임상수 _ 저 상처 안 받아요. 의도대로 안 읽히는 걸로 상처 안 받아요. 관객이 안 드는 것 때문에 상처를 받지. 한 작품을 만들어서 그걸 소비하는 건 소비자의 입장인 거예요. 저쪽에서 어떤 의도로 받아들였는지, 사실 뭘로 알겠어요. 그게 제대로 받아들여졌든 아니든 간에 본 사람들에게 그 영화는 어떤 영향을 발휘하는 거예요. 소통하는 거죠. 겉으로는 영화를 씹더라도 집에 가서 그 영화를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는 거고, 인생을 살다가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언뜻 그 영화가 다시 생각날 수도 있는 거고, 5년 후에 케이블 TV에서 다시 보고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요. 그런 게 다 소통인 거죠.
지승호 _ 길게 보시는 거군요. 어차피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영화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런 것들의 영향이 모여서 변할 텐데,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만으로 변했다고 생각할 거구요.
임상수 _ 자기 스스로 변한 거죠. 영화도 자기가 선택해서 보는 거니까 결국 자기가 변한 거죠."   - 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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