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긋는 소녀 (Sharp Objects, 2014) 읽다


* Gillian Flynn


"열한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누가 됐든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작은 파란색 수첩에 적어댔다. 그때부터 막내기자 노릇을 한 셈이다. 모든 구절을 종이에 잡아두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말은 진짜가 아니었고, 미끄러져 사라져버렸다. 나는 허공에 걸려 있는 단어들(카밀, 우유 좀 건네줘)을 보았고, 마치 제트기가 내뿜은 연기가 사라지듯 그 단어들이 희미해져 가면 마음속 켜켜이 초조함이 쌓여갔다. 하지만 글로 적으면 그 단어를 갖게 되는 셈이었다. 단어의 생명력이 끊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언어에 있어서는 보수주의자였고 교실에서는 별종이었다. 종교 문제에는 날카롭게 선을 긋는 한편, 끊임없이 문장을 베껴 적는("피니 선생님은 완전히 게이야", "제이미 돕슨은 못생겼어", "걔네 집은 초콜릿 우유는 절대로 안 마신대") 빡빡하고 신경질적인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 97P



"사람들은 언제나 우울증을 푸른빛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로서는 연푸른빛 기분을 품고 깨어날 수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나에게 우울증은 노란 오줌색이다. 가느다란 오줌발이 몇 킬로미터고 질질 끌다가 희미하게 색을 잃어버리는."   - 101P



"우리가 물방울무늬 이불을 나란히 덮고 누워 비밀을 속삭이며 서로 끌어안고 잠드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러고 나서 내가 나와 메리언을 상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메리언이 내 옆에서 잠드는 모습을. 몸을 구부려 내 배에 기대면서 뱉어내던, 뜨겁게 가르랑거리던 그 소리. 나는 아침에 어머니가 일어나기 전에 그녀를 다시 자기 방으로 데려다놓아야 했다. 고요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그 조용한 난리법석. 그녀를 데리고 어머니 방 앞의 복도를 지나치는 바로 그 5초 남짓한 순간, 방문이 열릴까봐 조마조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얘는 안 아파요, 엄마. 걸리기라도 하면 내가 말하려고 준비해둔 말이었다. 별로 아프지 않으니까 이제 침대에서 나와도 돼요."   - 286P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