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13) 읽다


* 김애란, 함정임, 이평재, 천운영, 편혜영, 손홍규, 이장욱, 염승숙, 김이설


"대부분 혼자지만 아주 드물게 둘 이상일 때도 있었다. 온종일 홀로 관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짝이 있는 이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그들이 동성同姓 혹은 남남 사이라고 해도 그랬다. 반면 짝이 있는 이들은 상대가 자기보다 먼저 죽으면 어쩌나 근심하느라 얼굴이 항상 핼쑥했다. 상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그랬다. 이들은 이곳에서 종종 고독 때문에 미쳐가는 자들을 봤다."   - <침묵의 미래>, 김애란, 18P



" - 엄마는 없어…… 난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 고아야.
그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읍. 그는 풍선을 삼킨 듯했다. 그는 삼킨 풍선이 다시 입 밖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은 복부 아래쪽까지 쑥 내려갔다. 그리고 펑 터졌다. 터지면서 부서졌다. 부서진 고아 알갱이들이 목구멍 쪽으로 치솟아 올라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목젖을 닫았다. 입을 막고 막은 손을 한 번 더 막아세웠다. 그가 버티면 버틸수록 그것은 더 광포한 힘으로 들썩거리며 그를 몰아세웠다. 그 말이 그의 목젖을 후려쳤다. 그 말이 그의 입술을 벌렸다. 그 말이 그의 두 손을 밀쳐냈다. 그리고 용암처럼 분출했다. 파핫 폭죽을 쏘아올렸다. 삼킨 그 말이 울음을 터뜨렸다.
고아가 터뜨린 폭죽."   - <엄마도 아시다시피>, 천운영, 160P



"그는 자신이 선량하고 성실하며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도 명확한 신념과 원칙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일로 그런 게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인간이란 신념이 흔들릴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법인데, 자신에게는 애당초 흔들릴 신념조차 없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에게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만이 있다. 그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순간적인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나 그게 가진 능력의 전부이다. 그가 자부하던 건전한 양심과 신념, 사회적 위상과 도덕에의 의지, 원칙이나 선의 같은 것들은 그간 주머니에 비축된 먼지의 양보다 적다. 그는 그저 상황과 위기에 걸맞게 신념과 가치라는 걸 조작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을 착각했고 과신해왔다."   - <밤의 마침>, 편혜영, 198P



"가족 가운데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윤희는 반드시 필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아니면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말이 생겨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윤희의 가슴 밑바닥에는 발설되지 못한 말들이 하역된 채 녹슬었다. 나는 윤희가 오래된 드라마의 단역배우처럼 절규할 때 가슴을 두드리는 이유도 그래서일 거라고 짐작했다."   - <배우가 된 노인>, 손홍규, 218P


덧글

댓글 입력 영역